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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이야기

토트넘(Tottenham Hotspur)의 비는 언제쯤 멈출까?

by WILDCATS 2023. 9. 22.

Tottenham Hotspur Stadium

토트넘 홋스퍼 FC(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는 잉글랜드 북런던 토트넘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축구 구단으로, 현재 프리미어리그에 속해 있으며, 간단히 줄여서 스퍼스(spurs)라고 불립니다. 현재 홈 경기장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Tottenham Hotspur Stadium)으로, 이전의 홈 경기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을 철거한 자리에 60,000석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2019년 4월 개장하였습니다. 2018년 7월 27일 신축 구장의 명칭이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로 확정되었습니다.

 

1882년에 창단한 토트넘은 1901년 FA컵에서 첫 트로피를 획득한 유일한 논리그 구단입니다. 1950-51시즌과 1960-61시즌에는 풋볼 리그 1부에서 우승하였고, 1961년에는 FA컵과 리그에서 동시에 우승하여 20세기에 잉글랜드 구단으로서 처음으로 더블을 기록하였습니다. 이후에도 FA컵에서 우승하였으며, 1963년에는 잉글랜드의 구단 중 첫 번째로 UEFA 컵위너스컵을 획득하였습니다.

 

1970년대에는 리그컵에서 두 번 우승하였으며, 1972년에는 UEFA컵의 초대 우승팀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FA컵에서 5번, FA 커뮤니티 실드와 UEFA컵에서 각각 2번씩 우승하였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는 FA컵과 리그컵에서 우승하고, 2008년에는 리그컵에서 한 번 더 우승하여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모든 시기에서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획득한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구단의 상징은 축구공 위에 서 있는 수평아리(싸움닭)이고, 모토는 'Audere est Facere'라는 라틴어이며 영어로는 'To Dare is To Do.'로서 '용감한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토트넘의 전통적인 마스코트를 흔히 처피 코크럴(Chirpy the cockerel)이라고 부르는데, 어린 수평아리 모양의 새입니다. 취미는 축구, 요가 등이 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은 물론 전세계에 있는 모든 토트넘 팬들이 좋아하는 마스코트이며 토트넘 엠블럼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같은 런던 출신 팀들과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라이벌은 북런던 더비에서 맞대결을 하는 아스날 FC(Arsenal Football Club)입니다. 2023년 9월 현재 감독은 엔제 포스테코글루(Ange Postecoglou)입니다. 2023-24 시즌에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손흥민이 공식 주장을 맡으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토트넘 핫스퍼스의 역사

1882년 9월 5일, 홋스퍼 크리켓 클럽의 회원 바비 버클이 이끄는 남학생 그룹이 겨울 동안 스포츠를 하기 위해 토트넘 핫스퍼 FC를 창단했습니다. 1년 후, 소년들은 올 할로우즈(All Hallow's) 교회의 성경 수업 선생님인 존 립셔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립셔는 클럽의 첫 회장과 회계원이 되어 재정을 재구성하고 클럽의 구장을 찾는 등 클럽의 형성기 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84년 4월, 클럽은 북런던으로 잘못 온 다른 런던 클럽인 홋스퍼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토트넘 핫스퍼 FC'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다른 지역 클럽들과 친선 경기를 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제대로 된 경기장도 없는 논바닥 수준이었던 습지 (Tottenham Marshes)에서 열린 첫 번째 경기는 1882년 9월 30일, 홋스퍼가 0-2로 졌던 지역 팀인 라디칼스와의 경기였습니다. 1885년 10월 17일, 런던 어소시에이션 컵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세인트 앨번스라는 회사의 팀과의 첫 경기에서 5-2로 이겼습니다. 이 경기는 지역 사회의 관심을 끌며 홈 경기 관중이 늘었습니다. 14,000개의 좌석이 있는 노섬벌랜드 공원(Northumberland Park)에서 열린 1892년, 토트넘은 처음으로 단명한 남부 동맹이라는 리그에서 경기를 했습니다. 이 리그는 1894년 해체되었지만, 토트넘은 1895년부터 남부 리그에 참가하며 프로 팀으로 전환했습니다.

 

1895년 12월 20일, 토트 핫스퍼는 프로로 전환하고 남부 리그 디비전 1에 가입했습니다. 이는 클럽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프로가 되면서 스퍼스는 더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더 많은 경기를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곧 클럽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카메론은 1899-1900 시즌에 스퍼스가 첫 번째 트로피인 서던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01년, 스퍼스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첫 경기는 2-2로 비기고, 재경기에서 3-1로 이기며 1888년 풋볼 리그가 결성된 이후 비리그 클럽으로 유일하게 FA컵을 우승한 팀이 되었습니다.

White Hart Lane

1910년 FA컵 우승 이후로 토트넘 홋스퍼의 엠블럼은 싸움닭이 그려진 문장이었습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그의 싸움닭 발목에 박차를 달았고, 이것이 클럽 문장에 반영되었습니다. 토트넘의 상징인 닭은 일명 게임콕(싸움닭) 또는 코크럴(싸우기를 좋아하는 젊은이)이라고 불리는 닭입니다. 1909년 이전 토트넘 선수인 윌리엄 제임스 스콧은 축구공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는 박차를 단 어린 수탉을 형상화한 청동 뱃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부터, 수탉과 축구공이 그려진 문양이 클럽의 주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방패 안에 닭을 그려 넣었으며 1966년부터 현재까지 축구공 위에 서 있는 닭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엠블럼의 의미는 싸움닭처럼 공격축구를 하자는 뜻입니다.

 

토트넘 서포터들은 런던 내에 있는 대부분의 팀들과 경쟁 관계인데, 이 팀들 중에서 가장 치열한 관계는 북런던의 경쟁 팀 아스널입니다. 경쟁 관계는 아스널이 플럼스테드의 매너 그라운드에서 하이버리의 아스널 스타디움으로 옮겨온 1913년부터 시작되었고, 이 관계는 토트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퍼스트 디비전 무대를 아스널이 차지함으로써 예상치 못하게 퍼스트 디비전으로 승격한 1919년에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토트넘 서포터들은 이웃한 런던 연고 팀들인 첼시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도 대단한 경쟁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트넘과 유대인

토트넘의 서포터가 이드(Yid)라고 불리는 이유는 연고지인 토트넘이 유대인들의 밀집해 거주한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런던 인근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았는데, 특히 토트넘 근처에는 하시디즘을 추종하는 유대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토트넘엔 유대인 팬층이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첼시는 유달리 이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1936년부터 첼시 서포터들이 "토트넘 녀석들을 나치에게 보내자"라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는데, 나치랑 영국이 전쟁을 벌이면서 이런 응원가도 당연히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토트넘에서 활약할 1994-95 시즌에 당시 첼시 서포터들은 그를 지드(Yid) 위르겐이라고 비하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토트넘 서포터들 역시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국기를 응원기로 사용하거나 팀의 승리 시 ‘이드’를 외치며 대응하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일반 토트넘 팬들에게도 전해지며 유대인의 정체성이 퍼져나가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토트넘의 구단주인 조 루이스와 회장인 다니엘 레비 역시 유대인입니다. 토트넘 소속이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 이영표가 회고하길, 다른 간부직에도 유태인이 많으며 서포터에도 유대인이 많아서인지 다윗의 별 같은 유대인 깃발을 많이 흔들었다고 합니다. 토트넘 서포터가 이드라고 불리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토트넘의 유대인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설적인 선수

첼시에서 17살에 데뷔한 이래 4시즌 동안 124골을 몰아치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고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자(266골)이었던 지미 그리브스(James Peter Greaves)는 선수 생활 내내 알코올 중독에 시달려 전성기를 일찌감치 마감했고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평생 고통받은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021년 9월 19일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지미 그리브스의 득점 기록은 2023년 2월 6일 잉글랜드의 주장 해리케인(Harry Kane)에게서 깨졌습니다.

 

해리케인은 토트넘 소속으로 280골을 기록 했으며 프리미어 리그 득점 순위(2위,213골)에서도 1위 앨런시어러(Alan Shearer)의 260골을 넘어설 것이 유력시 되지만 현재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으로 기록 갱신은 잠시 멈춘 상태입니다. 그외에도 외국인 선수 최다득점 부분에 대한민국의 손흥민이 148골로 1위를 기록 중인데 토트넘 통산 득점에서도 6위를 기록중인 손흥민이 역대 4위인 마틴 치버스(Martin Chivers)의 174골을 넘어 설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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